2007. 11. 28. 15:59

패스트푸드가 미각 퇴화시켜

유전자가 미각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후각과 마찬가지로 미각도 경험과 학습에 따라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의 연구자들은 젊은 세대의 미각이 둔감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학 신입생들에게 설탕(단맛), 소금(짠맛), 식초(신맛), 키니네(쓴맛), MSG(감칠맛)를 각각 농도 0.001∼0.04%까지 4단계로 물에 희석한 뒤 맛을 보게 했다. 그 결과 27%만이 가장 낮은 농도에서 다섯 가지 맛을 구별했다. 20여년 전 행해진 동일한 실험에서 50%가 맞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음식을 접해야 섬세한 미각을 가질 수 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맛의 규격화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패스트푸드를 좋아하니까요.”이탈리아의 와인제조사인 굴피(Gulfi)의 소믈리에 마시모 루피노의 설명이다. 서울 평창동에 위치한 보르도와인아카데미에서 이탈리아 와인에 대해 강의하기 위해 내한한 그는 20여 년 동안 복잡미묘한 와인의 맛을 식별하는 훈련을 해온 ‘혀’의 소유자다. “이탈리아에서도 이런 현상이 문제가 됐습니다. 그 결과 수년 전부터 초등학교에서 1주일에 한시간씩 맛을 보고 향을 맡는 시간이 생겼습니다.”처음에는 배울 것도 많은데 무슨 한가한 짓이냐며 반발하는 학부모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풍부한 감각체험이 정서뿐만 아니라 신체적 건강에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고 한다. 루피노는 “현대인은 너무 바빠서 그런지 맛을 음미하지도 않은 채 음식을 삼킨다”며 “따라서 이런 상태에서도 맛을 느끼게 하려면 패스트푸드에 조미료를 과도하게 써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렇게 단순하고 과도한 맛에 계속 노출되면 혀는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루피노는 “와인도 그렇지만 좋은 음식은 맛에 균형과 조화가 담겨 있어야 한다”며 “음식을 천천히 먹으면서 맛과 향을 충분히 음미한다면 절대 과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9세기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미식가였던 프랑스의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은 1825년 펴낸 저서 ‘미식 예찬’에서 “미식을 대식이나 폭식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며 “미식법의 목적은 가능한 한 가장 좋은 음식을 수단으로 하여 인간의 보존에 주의하는 것”이라고 쓰고 있다. 다양한 맛을 경험하고 미각을 세련되게 만드는 것이 결국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