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 메커니즘 최근에야 밝혀져
(맛있는 요리가 풍성하게 나온 잔치는 하객들에게 오랫동안 좋은 인상을 남긴다.)
맛을 보는 기관은 물론 혀다. 이 사실은 인류가 문명을 창조하기 전부터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러나 혀가 어떻게 맛을 감지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메커니즘은 최근에야 밝혀지고 있고 아직도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불과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맛의 종류는 네 가지였다. 짠맛, 신맛, 단맛, 쓴맛이 그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과학자들이 여기에 우마미(umami), 즉 ‘감칠맛’을 더했고 논란 끝에 위의 어느 맛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인정돼 맛의 종류가 다섯 가지가 됐다.
단맛은 포도당 등 각종 당분자가 단맛 수용체에 닿았을 때 느껴진다. 마치 열쇠와 자물쇠처럼 당분자가 수용체에 끼워지면 수용체의 구조가 바뀌면서 세포 안에서 일련의 신호전달 과정이 일어난다. 당분자는 몸에서 분해돼 칼로리를 내므로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달콤한 맛에 쾌락을 느끼게 진화했다. 감칠맛 수용체는 아미노산의 하나인 글루탐산을 감지한다. 글루탐산은 주로 고기나 생선에 풍부하게 들어있다. 감칠맛 역시 영양이 풍부한 음식임을 나타내는 신호다. 음식에 맛을 더하는 합성조미료란 다름 아닌 글루탐산염(MSG)이다.
단맛과 감칠맛을 감지하는 수용체의 유전자가 밝혀진 것은 지난 2003년. 여기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불과 세 개로 각각 T1R1, T1R2, T1R3로 불리는 수용체 단백질을 만든다. 이 가운데 T1R2와 T1R3가 결합되면 단맛을 감지하고 T1R1가 T1R3가 결합되면 감칠맛을 맛보는 것으로 밝혀졌다. 몸에 영양분임을 나타내는 두 맛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분자수준에서도 증명된 셈이다.
짠맛은 나트륨이온(Na+)같은 미네랄이 혀의 짠맛 수용체에 닿았을 때 느껴진다. 몸속의 미네랄이 부족하거나 지나치면 세포활성이나 신경전달에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짠맛이 적당하면 입맛이 다셔지지만 과다하면 불쾌한 느낌으로 바뀐다. 너무 싱거운 음식도 맛이 없게 느껴진다.
신맛은 수소이온(H+)이 신맛 수용체에 닿았을 때 감지된다. 약한 신맛은 입맛을 돌게 하지만 강한 신맛은 사람 뿐 아니라 동물도 거부한다. 왜 그럴까. 경북대 생물학과 김언경 교수는 “음식을 부패시키는 미생물은 산을 내므로 강한 신맛은 오염된 음식이니 뱉으라는 경고”라며 “풋과일의 시큼한 맛도 아직 당분이 충분치 않아 영양가가 없다는 신호”라고 설명한다.
짠맛과 신맛의 수용체는 단맛이나 감칠맛, 쓴맛의 수용체와는 달리 이온 채널의 형태다. 즉 미네랄 이온이나 수소이온이 이온채널을 통과해 세포 안으로 직접 들어가 신호를 전달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온채널의 유전자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쓴맛은 다소 독특한 미각이다. 다른 맛들이 섭취하는 음식의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라면 쓴맛은 먹어서는 안되는 것을 경고하는 역할을 한다. 이 세상에는 먹었을 때 탈을 일으키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게 하는 것들이 널려있다. 동물의 미각은 이런 분자가 입안에 들어오면 쓴맛을 느끼게 해 뱉어내게 진화해 왔다. 이런 현상은 사람뿐 아니라 초파리에서도 보인다.
그런데 자연계에서 쓴맛을 내는 분자는 수천가지나 되고 구조도 다양하다. 따라서 쓴맛 수용체, 즉 쓴맛을 내는 분자와 결합해 그 신호를 전달하는 단백질의 종류가 하나 뿐이라면 이들을 모두 감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지난 2000년 쓴맛 수용체의 유전자가 발견되자 이런 추측이 사실로 확인됐다. 수용체의 종류가 적어도 24가지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쓴맛도 24가지로 세분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연구결과 이들 수용체에서 전달된 신호는 모두 하나의 신경으로 통합돼 뇌로 들어간다. 즉 하나의 쓴맛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어차피 쓴맛은 몸에 해롭다는 정보만 알려주면 충분하므로 굳이 그 종류를 구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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