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1. 28. 15:58

필요에 따라 민감도 달라

(온 가족이 풍성한 먹거리를 함께 하는 것은 행복한 가정의 한 요소다.)

‘시장이 반찬’이란 말이 있다. 배가 고프면 밥 한 그릇에 김치 한 조각도 꿀맛이다. 반면 허기가 채워지면 일류 요리사가 만든 고급 요리에도 손이 가지 않는다. 말라위 말라위대 입 즈베레브 교수팀은 16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배가 고플 때 짠맛과 단맛에 대한 민감도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 음식을 먹은 뒤에는 민감도가 현격하게 떨어졌다.

즈베레브 교수는 “이런 현상은 우리 몸이 영양분을 섭취할 필요가 있을 때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쓴맛에 대한 민감도는 식사 전과 후가 변함이 없었다. 그는 “쓴맛은 독에 대한 경고이므로 민감도가 늘 일정해야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여성은 남성보다 쓴맛에 더 민감하고 특히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쓴맛을 더 잘 느끼게 되고 임신 중에 민감도가 가장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수행한 예일대의대 린다 바르토셕 교수는 “여성은 임신 중에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쓴맛에 더 민감하도록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반면 남성은 단맛에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맛에 대한 민감도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이런 현상은 특히 쓴맛에서 두드러지는데 여기에는 유전적 영향이 있는 것으로 추측됐다. 연구자들은 오래 전부터 쓴맛을 내는 물질 중 하나인 페닐티오카바마이드(PTC)에 대한 민감도의 차이를 조사해 왔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연구결과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이런 현상을 유전자차원에서 명쾌하게 밝힌 연구자가 바로 김언경 교수. 올해 경북대에 부임한 김 교수는 지난 5년간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쓴맛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왔다. 김 교수는 PTC를 감지하는 쓴맛 수용체의 유전자를 인간의 7번 염색체에서 찾아냈다. TAS2R38로 명명된 이 유전자는 세곳에서 염기의 종류가 바뀔 수 있는데 그 결과 다섯가지의 수용체 분자가 만들어진다. 특이하게도 아프리카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쓴맛에 가장 민감한 PAV 타입과 가장 둔감한 AVI 타입만 존재한다. 아시아인의 경우 PAV 유전자가 58%, AVI 유전자가 42%다. 김 교수는 “AVI 타입인 사람은 쓴맛에 대해 100∼1000배나 덜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현재 다른 쓴맛 수용체에 대해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AVI 타입을 갖는 사람들은 왜 도태되지 않고 아직 살아남았을까. 김 교수는 “이에 대한 해답은 우리도 궁금해하고 있다”면서 “TAS2R28은 여러 쓴 맛 가운데 한 타입만을 감지하는 수용체이므로 이것이 둔감해도 나머지 쓴맛 수용체가 민감하다면 별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바르토셕 교수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쓴맛을 내는 물질은 과도할 경우 독으로 작용하지만 소량은 오히려 건강에 좋을 수 있다는 것. 바르토셕 교수는 “쓴맛에 민감한 사람들은 브로콜리 같은 씁쓸한 야채를 잘 먹지 않는다”며 “그 결과 항암물질의 섭취가 부족해져 대장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바르토셕 교수는 “잡식동물인 인간은 환경에 잘 적응하려면 독을 피해야 할 뿐 아니라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쓴맛에 대한 민감도가 다양한 현상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