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15. 16:29

마우스도 귀찮아, 생각만으로 움직일 순 없을까

글쎄, 난 생쥐가 아니라니깐. 더더구나 월트 디즈니가 만들어낸 장난꾸러기 미키마우스 따위를 나와 착각한다는 건 참을 수 없어.


내 이름은 마우스야. 생쥐도 아니고 미키마우스도 아닌 마우스일 뿐이야. 둔한 몸체의 키보드나 게임만 아는 조이스틱과는 완전히 다른 마우스라구.
그럼 왜 하필 생쥐를 뜻하는 마우스란 이름을 가졌냐고? 그건 나도 모르지.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건 부모니까.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사람은 더글러스 엥겔바트라는 사람이야. 미국 스탠포드연구소에서 일하던 그는 1968년 나무를 깎아 만든 원조 마우스를 한 컴퓨터 회사에서 선보였어.
그런데 이상한 건 나를 만든 엥겔바트도 왜 내가 마우스로 불리게 되었는지 모른다는 거야. 생김새가 생쥐와 비슷하다는 단서뿐, 누가 언제 처음으로 마우스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는 이제껏 밝혀지지 않았어.


사실 난 그보다 5년 먼저 태어날 수도 있었어. 엥겔바트가 1963년에 나와 비슷한 개념을 창안해 공개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거야. 심지어 어떤 이들은 마친 짓이라고 비웃기까지 했어. 지금은 키보드와 내가 없는 컴퓨터를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 당시로서는 아주 획기적인 장치였거든.


허기야 지구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만 해도 우리처럼 세련된 인터페이스는 상상도 못했지. 아참, 인터페이스가 뭐냐 하면 두 시스템 간의 연결 통로를 말하는 거야. 쉬운 예를 들자면, 맛있는 음식이 잔뜩 차려진 뷔페식당에 들어갔다고 상상해봐.


그 음식들을 먹으려면 접시와 포크를 먼저 준비해야겠지. 또 음료수를 마시려면 컵을 준비해야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려면 스푼이 있어야겠지. 뷔페 음식과 사람을 이어주는 포크와 접시, 컵, 스푼 같은 것들을 바로 인터페이스라고 보면 돼.


그럼 컴퓨터와 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이겠어?


미 국방부의 지원을 받아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1946년에 완성한 에니악은 길이 24미터, 무게 30톤이나 되는 공룡만한 컴퓨터였어. 이 거대한 기계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1만7천468개나 되는 진공관을 일일이 배열해야 했지. 에니악의 입출력장치는 스위치와 플러그뿐이었으므로 당시 개발자들은 플러그보드와 스위치세트를 일일이 조작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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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전도 측정 모습  ⓒ

그 후 진공관 배열에서 한 단계 진화한 인터페이스가 구멍이 송송 뚫린 천공카드였어. 딱딱한 종이카드에 규칙적으로 작은 직사각형 구멍을 뚫어 데이터를 표시하는 방식이었지.


그러니 이때까지만 해도 컴퓨터와의 의사소통은 일부 전문가들만이 가능한 일이었어. 일반인들은 컴퓨터라는 뷔페식당에 들어가도 포크와 스푼을 찾지 못해 쫄쫄 굶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


일반인 출입금지 컴퓨터 식당의 문을 활짝 열어준 것은 바로 키보드였어. 키보드는 0과 1로만 수행되던 디지털 명령을 언어 기호로 분산시켜 일반인들도 컴퓨터에 직접 명령을 입력하게 만들어주었지.


키보드가 등장한 후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OS(컴퓨터운영체제)가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인터페이스도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어. 그래서 내가 태어났고, 게임 기능이 강화된 조이스틱도 나타난 거야. 지금은 컴퓨터와의 연결선을 아예 없애버린 무선 키보드와 무선 마우스는 물론 화상카메라와 헤드셋 등 다양한 인터페이스가 사용되고 있지.


그런데 요즘 나를 놀라게 하는 소식들이 계속 들려오고 있어. 키보드나 나 말고 새로운 인터페이스 개발에 과학자들이 몰두하고 있다는 거야. 허기야 그동안의 급속한 컴퓨터 변천사로 볼 때 우리가 장기집권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지.


그럼 과학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차세대 인터페이스는 과연 무엇일까. 그건 놀랍게도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엄청난 계획이야.


글쎄, 사람과 컴퓨터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데, 서로간의 의사소통이 과연 가능할까. 사실 무선 키보드나 무선 마우스도 선만 없을 뿐이지 컴퓨터와 전기신호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거든. 하지만 사람의 몸에서도 전기신호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그 계획이 엉뚱한 발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


차갑거나 아픈 감촉을 느꼈을 때 사람이 그걸 뇌에서 알아차릴 수 있는 건 전기신호 때문이야. 즉, 맛을 느끼거나 촉감을 느끼는 등 인체 내에서 서로 주고받는 신호는 모두 전기신호야.


예를 들면 사람의 팔 근육이 수축할 때 발생하는 전기신호는 근전도(EMG)로 기록돼. 사람 피부에 미세 전극을 꽂으면 EMG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데, 이를 약 1만배 정도 증폭해서 컴퓨터로 보내면 마우스를 사용하는 것처럼 화면 위의 커서 위치를 움직일 수 있지.


사람의 안구도 각막 사이에 전압 차이가 있어서 눈을 움직이면 전기신호가 발생해. 이 전기신호는 안전도(EOG)로 기록되는데, 눈알을 깜빡거려 컴퓨터 화면의 글자를 이동시킬 수 있다는 게 증명되었어.


그러니 인간의 모든 정신작용이 이루어지는 뇌에서 나타나는 전기신호인 뇌파를 이용하면 정말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겠지.


2003년 10월, 미국 듀크대의 니코렐리스 박사팀은 붉은털원숭이의 뇌에 머리카락 한 올보다 얇은 전극을 이식했어. 그리고 이 전극을 컴퓨터로 연결했지. 원숭이는 조이스틱을 이용해 커서를 화면 속의 목표물로 이동시켜 맞추는 게임을 했는데, 컴퓨터에 연결된 로봇팔도 원숭이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게 장치했어.


원숭이가 목표물을 맞추기 위해 움직일 때마다 각각 다른 일정한 패턴의 뇌파가 나온다는 걸 연구팀은 알아냈어. 그런 다음 조이스틱을 없앤 후 원숭이에게 게임을 시켰더니 모니터를 보면서 상상하는 것만으로 뇌파가 전극을 통해 컴퓨터로 전달돼 로봇팔을 움직일 수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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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에서 개발한 마인볼 게임 장치  ⓒ

2004년 8월엔 네덜란드의 신경학자 레이너 괴벨이 뇌에서 보내는 신호만으로 탁구를 할 수 있는 게임장치를 개발했어. 특정 대뇌피질의 전기신호를 잡아내 컴퓨터 화면 속의 탁구채를 움직이는 방식인데, 여기에는 환자 진료에나 사용되는 기능자기공명영상 장치를 비롯해 두뇌가 보내는 전기신호 데이터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가 동원되어야 했어. 그런데 재미있는 건 게임 실험에 참가한 사람마다 탁구 라켓을 움직이는 방식이 모두 달랐다는 거야.


이와 비슷한 게임으로 스웨덴에서 개발한 마인드볼이란 장치가 있어. 이 역시 뇌의 전기적 활동을 감지하는 머리띠 형태의 센서를 착용한 채 탁자 위의 공을 상대편 골문 쪽으로 밀어내는 게임이지. 대결 결과, 마음이 안정된 사람이 이긴다는 결론이 났어.


뇌파는 주파수 0.5~50헤르츠 범위 내의 느리고 연속적인 전자파인데, 눈을 감고 뇌가 쉬고 있을 때는 8~13헤르츠의 알파파가 나와.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을 때는 14~30헤르츠의 베타파가 나오고, 깊은 수면상태에서는 0.5~4헤르츠의 델타파가 출현해. 꾸벅꾸벅 졸거나 얕은 수면상태에서는 4~8헤르츠의 세타파가 발생하는데, 지각과 꿈의 경계 상태에 해당한다고 하지.


마인드볼 게임에서는 사람이 안정감을 느낄 때 발생하는 알파파와 세타파가 강한 사람이 탁자 위의 공을 상대편 골문 쪽으로 밀어낼 수 있었다는 거야. 이로써 뇌파 중에서도 특히 알파파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로 사용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게 현재까지 밝혀진 셈이지.


하지만 아직까지 인간의 뇌파로 컴퓨터를 움직이려면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해. 뇌파를 측정하기 위해 두개골 위에 수많은 센서를 붙이거나 뇌 부위에 미세전극을 심어야 하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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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EG로써 컴퓨터 화면의 볼을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실험을 하고 있다  ⓒ

더구나 그렇게 측정해낸 뇌파는 사실 똑같은 시도를 수백 번 실행해 보기 편하게 평균값을 낸 것일 뿐이야. 이런 평균값의 뇌파를 실제 컴퓨터에 적용하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점이 있어. 또 평균값이 아닌 단 한 번의 시도에서 발생한 뇌파를 해석하는 것도 뇌와 뇌전도(EEG) 시스템에서 발생되는 잡음 때문에 힘들어.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에서 이런 잡음을 걸러내는 방법을 개발했지만, 이 역시 가격이 너무 비싸고 수많은 전극을 머리에 붙여야 하기 때문에 아직 상용화되기에는 문제가 많아. 또 필요한 동작과 무관한 생각을 하거나 미지의 뇌파가 발생할 수도 있고, 뇌파가 시스템을 거치는 동안 왜곡될 위험성도 있지.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뇌파의 활성화 정도가 사람마다 달라서 수많은 경향에 따른 개인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한 것도 뇌-컴퓨터 인터페이스가 해결해야 될 문제점이야.


그런데도 과학자들이 굳이 나와 키보드 대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의 개발에 매달리는 것은 그 편리성과 다양한 활용도 때문이야. 특히 전신마비 환자들은 생각만으로 휠체어를 조종할 수 있고, 하반신 불구자의 다리 근육에 전기장치를 부착해 뇌파로 제어하며 보행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겠지. 또 비행기와 자동차도 머릿속 생각만으로 계기를 움직여 조종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때쯤이면 아마 ‘마우스’라는 내 이름도 더 이상 컴퓨터와는 상관없는 원래의 생쥐 이름 쯤으로 불리고 있을 테지…….

/이성규